[스크랩] 고향 친구가 좋다 고향의 말씨가 좋다
어제는 초등학교 동기동창들이 처음으로 같이 산행을 했던 날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광 군남국민학교 제 43회 1967년 졸업생들 중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이 같이 모여 첫 산행을 했다는 말이다. 사당역 5번 출구에서 10시에 만나서 관악산을 오르자고 세 번 문자를 보내고 내심 무척 기다리던 날이었다. 몇 명이나 올 것인가. 비가 오면 어떻게 하지. 점심은 산에서 먹을 것인가. 하산하여 식당에서 먹나. 최초 공지한 날로부터 근 한 달 동안 나는 이런 고민들로 행복했다. 마지막 문자에는 점심은 내려와서 먹는다로 결론지어 알렸다.
18명이 모였다. 재복.민래.형성.경영.재구.채조.성호.명수.정호.원식.덕연.나.금님.정례.덕례.인례.용순 나중에 참여한 원천까지... 산을 오르는 내내 땀을 흘렸고, 숨이 가빴고,힘들어 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표정은 다들 밝았다. 힘든데도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서도, 불규칙하고 미끄러운 돌과 바위를 밟으면서도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마침 비 온 뒤라서 맑게 개인 서울의 하늘은 맑았고 가금 떠 있는 구름은 솜털처럼 희고 탐스러웠다.
멀리 인왕과 북악, 도봉산까지 한 눈에 들어오면서 마음까지 탁 틔어졌다.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어떤 청량제를 마시는 것보다 시원했으며, 살갛과 옷을 온통 차지하고 있던 수분과 염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 " 네게 머문 순간 행복했어. 이제 네가 산에 오른 덕분에 우리도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즐거운 산행되기를 바래. 안녕!"
중간에 그늘이 있고 소슬한 바람이 있는 펑퍼짐한 곳에 둘러앉아 먹는 간식은 단순히 먹는 즐거움 이상의 기쁨을 선사했고, 적당히 나눠 마신 막걸리와 소주는 그나마 남아 있던 약간 서먹한 감정(근 40여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여럿있었으니까)까지 송두리째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우리는 그 옛날 근 50여년 전으로 술과 자연이 태워주는 타임머신을 타고 자연스레 돌아갈 수 있었다. 마음과 생각은 세월의 무게로, 객지 생활 일반적인 삶의 고통으로 덧칠해진 잡다한 색깔들이 일시에 사라지고 나니 우리가 처음으로 삼원색을 배우고 인식했던 본래의 원색(선명한 빨강, 파랑, 노랑, 흰색과 검은색)으로 돌아갔다.
담소(談笑)다. 말 그대로 웃고 이야기하고 우리들의 때 묻지 않은 순도 높은 웃음과 이야기는 산길 곳곳에 꽃처럼 뿌려졌다.
산 길 곁의 나무들과 바위들까지도 다 알아들을 정도로 편하며 채도 높은 고향 말로 말이다.
다시 행장을 수습하여 얼마쯤 올랐을까
혼자 딴 짓하다가 일행을 놓친 나는 서울대 공대쪽으로 가는 오솔길을 홀로 내려와야 했다.
나의 행방을 모르는 친구들은 내 욕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 둘, 내가 술을 많이 먹었다는 사실과 엉뚱한 곳으로 새지 않는 한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없으니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단다. 그래서 '혹시 바위에 떨어졌을지도 몰라' 라는 데 생각이 이르자 다투듯 전화는 계속 이어졌다.
나는 친구들의 관심과 사랑을 아무개 "콜 키퍼 통화연결 중 010- **** - **** 통화버튼을 누르면 연결됩니다." 라고 뜨는 문자메시지로서만 수 십번을 안타깝게 확인하고 있었다
내가 통화를 시도해도 벨이 울려서 받아도 안되는 불통지역이었던 것이다.
하여튼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남기고 하산하여 예약한 식당에서 시원한 맥주와 웃음소리와 걸직한 고향 사투리에 안주로 먹은 돼지갈비와 삼겹살은 정말 맛있었다.
"근게야", " 그래 갔고야이!" " 고것이 어추고 되얐냐허먼이이^^" "출레출데하다" "던잡스럽게" "싸묵싸묵" "가세! 놀세! 먹세! " 등의 구호와 정겨운 옛말들을 용케 그 때인양 거침없이 쏟아내는 친구들이 좋은 날이었다
항개도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좋았다. 그저 좋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짐했다.
" 매 월 한번씩 이렇게 만나자고, 죽을 때까지 이렇게 만나자고, 아프면 못 나오니, 죽으면 이 좋은 꼴 못 보느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