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

춘정 변선생의 시

低山下 2011. 1. 11. 15:02

 

감흥(感興) 7수


바람과 이슬이 싸늘하게 차디찬데 / 肅肅風露涼
별과 달은 휘황찬란 밝기도 하여라 / 輝輝星月明
긴긴 밤에 외롭게 혼자서 앉았으니 / 悄然坐長夜
오만 가지 감회가 가슴속에 일어나네 / 百感由中生
사나이 대장부는 입신이 귀중하니 / 男兒貴立身
출처를 그야말로 경솔히 할 수 없지 / 出處諒難輕
세인들은 의리 망각 천성도 팽개친 채 / 忘義決性命
녹록하게 영화만 이리저리 찾는데 / 碌碌徒求榮
자진이여 그대만은 무슨 일이 있기에 / 子晉亦何爲
구산에서 외롭게 생황을 불었는가 / 緱山獨吹笙

가함도 없는데다 불가함도 없으니 / 無可無不可
대성은 애초부터 명명하기 어렵다네 / 大聖初難名

이 몸이 들은 바에 신선이라 하는 것은 / 吾聞神仙人
고상하게 혼자서 붉은 노을 먹으면서 / 高步餐紫霞
호천에 혼자서 한가롭게 노닐면서 / 逍遙壺中天
세월이 가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고 / 流光任蹉跎
나의 생애는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지라 / 我生異於是
거문고 만지면서 탄식을 하였다네 / 撫琴良歎嗟
뱃속은 농사를 지어야 채우고 / 充腸用禾稼
몸에는 옷을 걸쳐야 따뜻하네 / 煖身以絲麻
오로지 선덕을 높이 쌓길 소원할 뿐 / 但願崇令德
수명의 장단에는 관심이 없다네 / 壽夭心靡他

상서로운 연꽃은 초목 중에 뛰어나니 / 瑞蓮出衆卉
때 안 묻고 그렇다고 화려치도 않다네 / 不染亦不靡
적지에서 뿌리를 내리지 않고서 / 結根非其地
엉뚱하게 이곳 동해가에 자랐구나 / 生此東海涘
이 몸이 길 가다 때마침 눈에 띄어 / 我行適見之
마음이 슬퍼서 그지없이 탄식했네 / 悲歎未能已
이 세상에 염계옹 가고 없으니 / 世無濂溪翁
연꽃이 군자인 줄 그 누가 알겠는가 / 誰知是君子
정말로 두려우이 눈보라가 몰아치면 / 政恐霜雪逼
붉은 꽃 오래도록 보기가 어렵다네 / 紅芳難久恃

봄철의 누에가 가을에는 나방되니 / 春蠶復秋蛾
세월은 그야말로 멈출 때가 없구나 / 歲月無停期
인생은 금석처럼 단단하지 않으니 / 人生非金石
젊은 시절 얼마나 유지가 되겠는가 / 少年能幾時
허명에 치달리어 날마다 얽매이니 / 馳名日拘束
고요히 생각할 때 마음이 슬프구나 / 靜言心傷悲
장성해서 학문에 노력을 안 한지라 / 旣壯不努力
백발이 성성토록 아는 것이 없다오 / 白首而無知
회상을 한 뒤에 장탄식을 하였으나 / 思之一長歎
앞으로 노력하면 만회할 수 있을 테지 / 庶幾來可追

첩첩 쌓인 산중에 묵은 측백 서 있는데 / 嶙峋有古柏
깊고 깊은 계곡에 뿌리를 내렸구나 / 托根深山中
서리가 밤낮으로 못살게 굴지마는 / 霜露日夜催
웅크린 용처럼 계곡에 누워 있네 / 臥壑如蟄龍
어찌하여 동량의 재목이 못 되겠나 / 豈乏梁棟材
훌륭한 목수가 없어서 슬프다네 / 所嗟無良工
여기 와서 오래도록 이상히 여겼는데 / 我來久吁怪
가지와 잎이 쓸쓸한 바람에 날리는구나 / 柯葉嘶悲風
접어두고 다시금 얘기하지 말자꾸나 / 棄捐勿復道
이런 한은 예나 지금 다를 바가 없으니 / 此恨今昔同
일본(一本)에 양동(梁棟)은 대하(大廈)로, 도(道) 자는 진(陳) 자로 되어 있다.

화려한 누각 어찌 그리 선명한지 / 綺樓何鮮明
뜬구름 가에까지 그 빛이 비치었네 / 照耀浮雲邊
누대의 가운데에 미녀가 있는데 / 樓中有佳女
그 자태 예쁘고 곱기도 하여라 / 容色妖且姸
결국에는 한 번도 미소짓지 않으니 / 一笑竟不發
고운 마음 누구에게 전할지 모르겠네 / 芳心誰爲傳
시험 삼아 거문고를 가져다 뜯었더니 / 試取鳴琴彈
서글픈 메아리가 청천으로 퍼지는구나 / 哀響飛靑天
바라는 건 군자의 배필이 되어서 / 願爲君子逑
이별 없이 백 년토록 해로하는 것이라네 / 偕老終百年

수많은 집마다 도화 이화 피었는데 / 千門桃與李
봄철 맞아 제각기 미태를 뽐내는구나 / 當春各爭媚
아녀자들 모여서 구경을 하더니만 / 兒女竟耽翫
시끄럽게 서로들 부귀를 자랑하네 / 爛熳誇富貴
어느 날 저녁에 뇌성벽력 일어나자 / 一夕龍火飛
남김없이 떨어져 고목만 남았다네 / 摧脫卽枯卉
그대는 남산의 소나무를 못 보았나 / 不見南山松
겨울이 되어도 여전히 푸른 걸 / 歲寒含晩翠


 

[주D-001]자진(子晉)이여 …… 불었는가 : 자진은 왕자교(王子喬)인데 고대의 신선이다. 구산(緱山)은 산의 이름으로 하남(河南) 언사현(偃師縣)에 있는데 구령(緱嶺)이라고도 한다. 도가(道家)의 전설에 신선 왕자교(王子喬)가 환량(桓良)에게 말하기를, “7월 7일에 구씨산(緱氏山) 고개에서 만나자.”고 하였는데 바로 그 산이다. 《列仙傳 王子喬》
[주D-002]호천(壺天) : 호천은 동천(洞天)과 같은데 도가(道家)에서 신선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술이기(述異記)》에 “인간의 36개 동천 가운데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은 10개이고 그 나머지 26개는 《구미지(九微誌)》에 나오기는 하나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주D-003]염계옹(濂溪翁) : 송대(宋代)의 학자 주돈이(周敦頥)로, 염계는 그의 호이다. 그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을 군자(君子)에 비유해 극찬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愛蓮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