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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山 조호익의 賦

低山下 2011. 5. 11. 09:44

유거부(幽居賦)


푸른 산은 높다랗고 골짜기는 깊숙하며 / 山之高兮谷之深
우거진 숲 고요하고 구름은 한가롭네 / 林之靜兮雲之閑
깊숙한 골짜기는 맑은 데다 공활하여 / 洞壑窈窕以泬㵳
석인이 소요하며 지내기에 마땅하네 / 宜碩人之盤桓
원숭이와 학을 시켜 나무를 끌게 하고 / 吾令猿鶴以曳柴兮
안개와 노을 쌓아 집 지을 터 닦았네 / 築煙霞以啓基
난초로 된 서까래에 계수나무 기둥에다 / 蘭橑兮桂棟
목란나무 잘라서 문설주를 만들었네 / 劈辛夷而爲楣
깎아지른 듯이 높은 산을 마주 대하였고 / 對峭削之崟嵌
옥 구르듯 쫄쫄대며 흐르는 물 임하였네 / 臨汨㶁之璆
그 속에서 노닐고 그 속에서 쉬면서 / 游焉而息焉
언제나 바른 도로 날 기름이 기쁘구나 / 喜頤貞之可常
정결하게 경미 빻아 밥을 지어 먹으며 / 精瓊糜以爲飡兮
손으로 호원 길러 음료 삼아 마시네 / 挹灝元而爲漿
하의의 겉옷에다 난초로 된 치마 입고 / 荷衣兮蕙裳
창포(菖蒲)로 벽 만들고 향초로 방 꾸몄네 / 蓀壁兮葯房
왼쪽에는 그림이요 오른쪽엔 서책이며 / 左圖兮右書
앞쪽에는 비자나무 뒤뜰에는 오동이네 / 前榧兮後梧
바람과 우레 끼고 마음을 노닐면서 / 挾風霆以游心
도기의 있고 없음 맞추어 따져 보네 / 契道器之有無
들짐승과 섞여 지내 나의 자취 없앰이여 / 混鹿豕以泯迹兮
상대와 나 사이의 경계 아예 없애었네 / 去物我之畦畛
유유히 날아올라 훌쩍하니 떠남이여 / 悠然逝兮
아름다운 봉새 타고 천길 높이 날으네 / 躡彩鳳乎千仞
느긋한 마음으로 편하게 지냄이여 / 倦而休焉
방 안에서 신령한 거북처럼 쉬고 있네 / 守靈龜於一室
언덕 위의 구름과 말고 폄을 함께하니 / 同卷舒於壟雲兮
야석에서 자리 다퉈 눈 부릅뜨지 않네 / 泯睢盱於野席
향그런 풀 뜨락에 무성하게 자람이여 / 芳草生兮萋萋
그 의사가 나와 서로 똑같음을 깨닫겠네 / 覺意思之一般
돌 틈 사이 흐르는 물 차서 이가 시림이여 / 石溜寒兮冰齒
금 소반에 담겨 있는 경장조차 누추하네 / 陋瓊漿於金盤
서리에 붉게 물든 단풍나무 숲이여 / 霜紅之纈林兮
화려한 꽃 오래가지 못함을 비웃누나 / 嗤繁華之不久
온 산에 가득 쌓인 변방 땅의 눈이여 / 朔雪之漫山兮
창우 보며 뒤늦게 시들기를 맹세하네 / 盟後凋於蒼友
군자가 지켜야 할 바를 생각함이여 / 緬君子之所操兮
어찌 처한 경우 따라 옮겨서야 되겠는가 / 夫豈所達之可移
풀잎 엮어 집 삼아도 몸 아니 불편하고 / 或結草而不病
다 해어진 옷 입어도 의로움은 살찐다네 / 或懸鶉而義肥
노래함엔 악기 치며 스스로 노래하고 / 歌自發於金石
곤궁해도 산꿩보다 수척하지 않다네 / 茹不臞於山雌
참으로 나름대로 즐기는 바 있나니 / 誠所樂之有在兮
돌아가서 의지할 곳을 얻은 것이로다 / 抑依歸之得所
땅속에 토굴 파서 깊숙이 몸 감춤이여 / 彼窟土之深藏
나무 기대 집을 지어 멀리 떠나가는도다 / 與因樹之遠去
녹문에 구름 삽짝 높다랗게 솟음이여 / 鹿門高兮雲扃
깊숙한 골짜기는 몇 겹이나 가려 있나 / 谷口深兮幾重
성인 시대 멀어서 못 만남이 슬프거니 / 吾甚悲聖遠而不遇
어찌 홀로 세상 피해 고상하게 지내는가 / 渠豈獨避世而高蹤
나의 자질 돌아보매 봉새를 물음이여 / 顧余質之問鳳兮
일찌감치 난초 차고 향풀을 드리웠네 / 夙佩蘭而紉茝
계수 지켜 고상하게 노닒 부끄럽나니 / 愧守桂之高蹈兮
사문에서 받은 가르침과는 거리가 머네 / 遠師門之承誨
우부는 팔을 베고 누웠어도 넉넉했고 / 圩父曲肱而有裕兮
갈성은 매어 놓은 말을 아니 돌아봤네 / 蝎聖繫馬而不顧
군자의 중한 바는 자신에게 있는 거로 / 君子之所重者在己
역시 또한 평소에 강구한 바 있는 거네 / 而亦自講之有素
마음속에 기른 바가 어떤가에 달렸나니 / 在所養之何如兮
어찌 바깥 허물로 스스로를 더럽히리 / 寧外累以自浼
선비란 몸 죽어도 절개 보전하는 건데 / 士固有伏鑕而全節兮
하물며 고개 밖서 죽지는 않는 데랴 / 矧不死之嶺外
광서 포위 당해서도 현가를 불렀었고 / 絃歌發於匡圍
부주(涪州) 있을 적보다도 수염 더욱 볼만했네 / 髭髮勝於在涪
배울 바가 다른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 視所學之匪他兮
성현 학문 버려두고 어디 가서 구하리오 / 捨聖賢而焉求
하늘 높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 산들이여 / 萬山之騰踊兮
너희들이 어찌 나를 가둘 수가 있겠는가 / 爾焉能以我囚
한 번 분통 터지면 세 번 일어나지만 / 一憤而三起兮
구 년 동안 그리한들 그 어찌 병통이랴 / 貫九年而奚病
인은 처한 데 따라 편함이 젤 귀하고 / 仁莫貴於安土兮
학문은 하늘의 명 아는 것이 우선이네 / 學莫先於知命
환난에 처해서도 행하는 데 도 있나니 / 行患難之有道
오랑캐 땅에서도 친해질 수 있는 거네 / 處蠻貊而可親

선인(先人)들의 훈계 믿고 대처하여 나간다면 / 奉前訓而周旋兮
저 옛날의 현인들께 부끄럽지 않으리라 / 庶無愧於古之人


 

[주C-001]유거부(幽居賦) : 조호익이 강동(江東)에 유배되어 있던 중인 선조 10년(1577)에 강동의 고지산(高芝山) 아래에 수지재(遂志齋)와 풍뢰당(風雷堂)을 짓고는 심의(深衣)에 복건(幅巾) 차림을 하고 그 가운데 단정하게 앉아 서책을 읽으면서 지낼 적에 지은 부이다.
[주D-001]석인(碩人) : 덕이 높은 은사(隱士)를 가르킨다. 《시경》 위풍(衛風) 고반(考槃)에, “은사의 집이 시냇가에 있으니, 석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考槃在澗 碩仁之寬]” 하였다.
[주D-002]바른 도로 날 기름 : 《주역》 이괘(頤卦)에 “이(頤)는 정(貞)하면 길하니, 길러 주며 스스로 음식을 찾는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頤 貞 吉 觀頤 自求口實]” 하였는데, 이에 대한 상(象)에, “이정길(頤貞吉)은 기름이 바르면 길한 것이다.” 하였다.
[주D-003]경미(瓊糜) : 옥가루로, 이를 먹으면 수명을 늘릴 수가 있다고 한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경옥의 가지 꺾어 반찬 만들고, 경미를 빻아서 양식 만드네.[折瓊枝以爲羞兮 精瓊糜以爲粻]” 하였다.
[주D-004]호원(灝元) : 하늘에 있는 청명하고 드넓은 기운으로, 천지의 원기(元氣)를 말한다.
[주D-005]하의(荷衣) : 연잎으로 만든 옷으로, 신선이나 도사, 은자가 입는 옷을 가리킨다.
[주D-006]도기(道器)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형이상자를 도라고 하고, 형이하자를 기라고 한다.[形而上者 謂之道 形而下者 謂之器]” 한 데서 나온 말로, 도(道)는 형상이 없는 사물의 이치를 말하고, 기(器)는 형상이 있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제도 등을 가리킨다.
[주D-007]들짐승과 …… 없앰이여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순(舜) 임금이 깊은 산중에 거쳐할 적에는 나무와 돌과 함께 거처하면서 사슴과 멧돼지와 함께 노시니, 깊은 산속의 야인과 다른 것이 별로 없었다.” 하였다.
[주D-008]말고 폄 : 세상에 나아가서 자신의 뜻을 펴거나 재주를 숨기고서 숨어 살거나 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9]야석(野席) : 촌로(村老)들과 격식이나 예의에 구애되지 않고 서로 어울려 노는 자리를 말한다.
[주D-010]그 …… 깨닫겠네 :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가 뜨락의 풀을 베지 않은 채 지내었는데, 정명도(程明道)가 그 이유를 묻자 답하기를, “나의 의사와 같기 때문이다.[與自家意思一般]” 하였다. 《宋元學案 卷12 濂溪學案下》
[주D-011]경장(瓊漿) : 신선들이 마시는 음료(飮料)를 말한다. 당나라의 배항(裴航)이 남교(藍橋)를 지나다가 선녀인 운영(雲英)을 만나서 경장을 얻어 마셨다고 한다. 《傳奇 裴航》
[주D-012]창우(蒼友) …… 맹세하네 : 창우는 소나무로, 절조(節操)를 변치 않기로 맹세한다는 뜻이다.
[주D-013]곤궁해도 …… 않다네 : 스스로 뜻을 얻어서 마음 편히 지내었다는 뜻이다.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수신(修身)에 이르기를, “‘꿩이 살찐 것은 그 뜻을 얻은 것인저.’ 하자, 어떤 자가 ‘안회(顔回)가 단사표음(簞食瓢飮)하여 삐쩍 마른 것도 뜻을 얻은 것입니까?’ 하였다. 이에 말하기를, ‘밝은 임금이 위에 있으면 백관(百官)이 되어 우양(牛羊)을 먹는 것도 역시 뜻을 얻은 꿩인 것이고, 어두운 임금이 위에 있으면 단사표음하면서 곤궁하게 사는 것도 역시 뜻을 얻은 꿩인 것이다. 어찌 삐쩍 마른 것을 따지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주D-014]땅속에 …… 감춤이여 : 시골에 은거해 살면서 학문을 닦는다는 뜻이다. 후한(後漢) 때 사람인 원굉(袁閎)은 부귀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농사를 지으면서 글을 읽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주군(州郡)에서 여러 차례 징소(徵召)하였으나, 모두 응하지 않고 토실(土室)을 쌓은 다음 그 속에 살면서 창문으로 음식을 들이고 내면서 18년 동안이나 몸을 감추고 있었다. 그 뒤에 황건적(黃巾賊)이 일어나 마을에 침입해 왔는데도 원굉이 큰소리로 글을 읽고 있자. 적도(賊徒)들이 원굉의 집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서로 약속하였다. 《後漢書 卷45 袁閎列傳》
[주D-015]나무 …… 떠나가는도다 : 시골에 은거하여 숨어 산다는 뜻이다. 후한 때 사람인 신도반(申屠蟠)은 집안이 가난하여 칠공(漆工) 노릇을 하면서 지내었다. 효행(孝行)으로 소문이 나서 군(郡)에서 주부(主簿)로 삼고자 하였으나, 나가지 않은 채 은거해 살면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 뒤 당고(黨錮)의 화(禍)가 일어나자 숲 속으로 들어가 나무를 인해서 집을 짓고 살면서 두문불출한 채 고상함을 길렀으며, 더욱 깊게 세상을 피해 살아 만절(晩節)을 보존하였다. 《後漢書 卷53 申屠蟠列傳》
[주D-016]녹문(鹿門) : 은자(隱者)가 사는 곳을 말한다. 한(漢)나라 말기에 현산(峴山)의 남쪽, 면수(沔水)의 물가에 방덕공(龐德公)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성안에는 들어가지 않은 채 날마다 밭갈이를 하면서 지내었다. 이들 부부는 서로 간에 공경하기를 마치 손님을 대하듯이 하였으며, 쉴 적에는 두건을 바르게 쓰고 단정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악기를 뜯었다. 그 뒤에 자기의 아내를 데리고 약초를 뜯으러 녹문산(鹿門山)으로 들어갔다가 사라졌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高士傳》
[주D-017]일찌감치 …… 드리웠네 : 속세를 피해 살면서 지취(志趣)를 고상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강리와 벽지 같은 향풀을 몸에 두르고, 가을 난초 엮어서 허리 장식 삼았네.[扈江蘺與辟芷兮 紉秋蘭以爲佩]” 하였다.
[주D-018]계수(桂樹) …… 노닒 : 숲 속에 숨어 살면서 세속을 피하고 자신의 몸만 깨끗이 한다는 뜻이다. 한(漢)나라 때 회남소산(淮南小山)의 무리들이 굴원(屈原)을 그리면서 〈초은부(招隱賦)〉를 지었는데, 그 가운데 계수나무가 깊숙한 산중에 살지만 간간이 향기를 풍기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워하게 한다는 내용이 있는 데서 나온 말이다.
[주D-019]우부(圩父)는 …… 넉넉했고 : 우부는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우(圩)는 정수리 부분이 움푹 들어간 것으로, 공자가 태어나면서 정수리 부분이 움푹 들어갔으므로 이름을 구(丘)라고 하였다고 한다.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가 말하기를,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은 또한 그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못하고서 부귀한 것은 나에게 있어서 뜬구름과 같다.’ 하였다.” 하였다.
[주D-020]갈성(蝎聖)은 …… 돌아봤네 : 갈성은 이윤(伊尹)을 가리킨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이윤이 유신(有莘)의 들에서 밭을 갈면서 요순(堯舜)의 도를 좋아했는데, 천하로써 녹을 주더라도 돌아보지 않고, 말 1000사(駟)를 매어 놓아도 돌아보지 않았다.” 하였다.
[주D-021]광(匡)서 …… 불렀었고 : 운명(運命)과 시세(時勢)에 순응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공자가 천하를 돌아다니다가 광(匡)이라는 곳에 갔을 적에 송(宋)나라 사람들이 공자를 양호(陽虎)로 잘못 알고 몇 겹으로 포위한 다음 해치려고 하였는데도 공자가 쉬지 않고 금(琴)을 탔다. 이에 자로(子路)가 그 까닭을 물으니, 공자가 모든 일이 운명과 시세에 따라 결정되는 것임을 알기에 마음 편하게 금을 타는 것이라고 답하였다. 《莊子 秋水》
[주D-022]부주(涪州) …… 볼만했네 : 송나라의 학자인 정이(程頤)가 소식(蘇軾)과 의견이 맞지 않아 대립하다가 쫓겨나 부주로 귀양 갔는데, 귀양에서 돌아온 뒤에 용모가 더욱 아름답고 수염이 더욱 볼만하였다. 이에 그의 문인들이 그 까닭을 묻자, 정이가 학문을 한 덕분에 그렇게 되었다고 답하였다. 《心經 卷2》
[주D-023]인(仁)은 …… 귀하고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천리를 즐기고 천명을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으며, 처한 데에 편안하여 인을 돈독히 하므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樂天知命 故不憂 安士 孰乎仁 故能愛]” 하였다.
[주D-024]환난(患難)에 …… 거네 : 처해진 경우에 따라 거기에 알맞게 행하면 어느 곳에서도 도를 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용장구》 제14장의 주(註)에, “환난에 처해서는 환난대로 행하나니, 군자는 들어가는 곳마다 스스로 만족하지 않음이 없다.”

 

 

*** 지산집의  유거부(幽居賦)

조호익이 강동에 유배되어 있던 중인 선조 10년에 강동의 고지산 아래에 수지재와 풍뢰당을 짓고는 심의와 복건 차림을 하고, 그 가운데 단정하게 앉아 서책을 읽으면서 지낼 적에 지은 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