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추억.옛것 [스크랩] 한국의 60년대 70년대 低山下 2011. 11. 23. 09:51 세월의 역사속에서 빛 바랜 옛 모습 세월의 역사속에서 빛 바랜 옛 모습 ↑ 서울 삼각지 로타리 1968↑ 인천 중국인촌 1968↑ 파주 용주골 1968↑ 양양 남해항 1968↑ 영주역 1969↑ 부산 영도다리 부근 1970↑ 안동 牛(소)市場 1971↑ 구례 피아골 1973↑ 서울 종로 2가 1974↑ 강릉 선교장 1980↑ 성철스님 1987 ↑ 1930년대 서울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근처에서 통학중인 배재고보 학생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43년 일본식 속옷 훈도시를 입고 강가에서 수영하다 찍은 기념 사진. ↑ 1933년 경주 수학여행을 찍은 사진들.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 등을뒤덮은 학생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36년 졸업앨범 사진. 학생들이 서로 엎드린 자세로 어우러져 배재학당의교표 이미지를 만들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20년대 화학 수업 광경.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20년대 교정에서 테니스를 치거나 실내에서 탁구를 치는 모습이다. ↑ 1936년 찍은 웅변부 동아리의 연습 광경. 각양각색의 자세로연사 흉내를 내는 모습이 재미있다. ↑ 1933년 배재고보의 어느 점심시간. 예나 지금이나 교실에서 도시락을까먹는 건 즐겁다. ↑ 70년대초 대구…넝마주이 소년((( 1970년대초만 해도 대구 지역곳곳에는 넝마주이나 아침에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는 거지,허잡스러운 물품을 팔러다니는 상이군경 등이 많았다.블록 담장에 지친 몸을 기댄 채 해바라기를 하며 생모를 생각하는듯 어린 넝마주이의 표정이 더없이 서럽기만 하다.2"70년대초 대구…넝마주이 소년((( 1970년대초만 해도 대구 지역곳곳에는 넝마주이나아! ㎰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는 거지, 허잡스러운 물품을 팔러다니는 상이군경 등이 많았다.블록 담장에 지친 몸을 기댄 채 해바라기를 하며 생모를 생각하는듯어린 넝마주이의 표정이 더없이 서럽기만 하다. ↑ 60년대 대구 물장수 아저씨((( 60년대만 해도 대구의 상수도 보급률은형편 없었다.변두리 달동네 주민들은 매일 공동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거나 매일동네를 방문하는 물장수 아저씨한테 물을 사먹어야만 했다.이때는 드럼통이 급수통으로 이용됐다. ↑ 60년대 개구쟁이들의 신천나들이((( 60년대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징검다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한 아이(왼쪽에서 네번 째)가 갓난애기를등에 업고 돌보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낸다.4"60년대 개구쟁이들의 신천나들이((( 60년대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징검다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한 아이(왼쪽에서 네번 째)가 갓난애기를등에 업고 돌보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낸다. ↑ 구름과자를 아시나요?((( 반세기 전만 해도 '국민학교' 앞은 불량 군것질거리의집산지였다.특히 뜨겁게 달궈진 철통 안에 설탕을 집어넣으면 금세 양철통에서 구름이피어올랐다.'구름과자'로 인기가 높았던 솜사탕 제조기는 척박한 일상을 살던 아이들에겐꿈결 같은 것이었다. ↑ 엄마 제가 이 잡아 드릴께요((( 공중위생 시스템이 전무했던 60년대에는이와 벼룩, 빈대가 주민들의 몸 곳곳에 기생했다. 볕이 좋은 날 동구 신천동푸른다리 근처 판잣집 앞에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면서 이를 잡아주고 있는 딸의 눈매가 더없이 훈훈하기만 하다.6"엄마 제가 이 잡아 드릴께요((( 공중위생 시스템이 전무했던 60년대에는이와 벼룩, 빈대가 주민들의 몸 곳곳에 기생했다.볕이 좋은 날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 판잣집 앞에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헤집으면서 이를 잡아주고 있는 딸의 눈매가 더없이 훈훈하기만 하다. ↑ 동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 '준공 직전의 경북도청'((( 준공 직전공사 중인 경북 도청 창문 턱에 올라가 손을 잡고 놀고 있는 동네개구쟁이들. 도청은 옛 중앙공원 자리에서 1966년 4월1일 현재자리로 이전했다.↑ 1968년 안양역 모습↑ 60년대의 부산 자갈치시장.↑ 60년대 자갈치 아지매들의 화사한 모습.↑ 2.28당시 경북고생들과 대구고생들이 경찰에 검거되어끌려가고 있는 모습↑ 1960. 3. 15 마산여고생 시위대에 소방차가 물을 쏘고 있다↑ 2·28직후 여학생들이 시위하고 있는 모습 ↑ 이순재와 남정임의 한창때 모습.최인현 감독이 1969년에 발표한 영화 "춘원 이광수"의 한 장면.춘원의 젊은시절 역을 맡은 "이순재"와 그의 아내 허영숙 역을맡은 "남정임"이 극중 연애하던 시절의 한창 때 모습이다."남정임"의 눈물이 고인 듯한 눈망울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사진이다.이 영화에서 중년 이후의 춘원과 허영숙 역은 "김진규"와 "조미령"이맡아서 열연한다."이광수"의 일대기를 "최인현"감독이 당대의 톱스타를 더블캐스트로 기용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영화화하였지만, 흥행에는실패했다.< /font> ↑ 60년대 극장 쇼무대의 트위스트 김 1960년대 극장 쇼 공연사진."트위스트 김"과 한 사람이 노래를 하면서 춤을 추고 있는 있는데저 사람이 극장쇼의 전설이라는 "체리보이"이다.1968년경 부산의 극장무대로 추정되는 사진. ↑ 60년대 통금위반자들. 5.16 이후 통금위반자를 서울 명동에 있던시공관에 임시 수용하고 있는 모습 ↑ 노래하는 추억의 스타 "김승호" ↑ 1960년대 아리랑 꽃신 ( 5cm ~ 7 cm )1960년 주한미군 이나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기념품으로 사간 아리랑 모형 꽃신 선물세트. 소형 남녀 고무신 한 켤레로 규격은마주 작은 모형이다.신발 안에는 KOREA라고 선명하게 찍혀 있는 글씨와 함께 두루마기의남자와 한복을 입고 춤을추는 여자가 그려져 있다. ↑ 1962년 강화대교 기공식.5.16 직후에 갑곶나루에서 거행된 강화도 육로개설 기공식에서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참석하여 치사를 하고 있다.이 강화대교는 오랜 난공사 끝에 1970년 준공된다. ▲ 1951. 4. 20. 대구 근교 훈련소에 신병 입대자들이 입소하고 있다. ▲ 1951. 5. 15. 대구 근교 훈련소에서 신병들의 수료식이 열리고 있다. ▲ 1951. 5. 15. 대구 근교 훈련소, 수료식을 마친 신병들이 부대배치를받고 있다. ▲ 1951. 5.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열차를 타고전선으로 가고 있다. ▲ 1951. 5. 20. 지게부대. ▲ 1950. 7. 7. 기마대 행렬. ▲ 1950. 7. 29. 주야간 전투에 지친 국군 병사들이 아무데서나 쓰러져자고 있다. ▲ 1951. 5. 29. 평화로운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 ▲ 1951. 5. 26.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는 전차가 고개를 넘어 마을로들어오고 있다. ▲ 1951. 9. 11. 피난길에 만난 형과 아우. ◈5060-행복과 추억의 낭만열차◈ 카페지기 일출 배상 출처 : 5060-행복과 추억의 낭만열차글쓴이 : 일출 원글보기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