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겨울아침

低山下 2012. 5. 8. 17:54

한 겨울의 긴긴 밤은 쉽게 물러나지를 않았다

집 가까이에 있는 범바위산에 불어오던 바람이 잠결에도 불어오는 듯한 한기를 느낄 때 쯤이면 매쾌한 생솔가지 연기 냄새에 잠이 깼다

  

신새벽에 아버지는 직업군인인 큰아들이 가져다 준 엷은 국방색 면 작업복 바지를 입으시고 모자 역시 군대에서 쓰는 방한모를 쓰시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가며 생솔가지를 낫으로 쳐서 한 지게 지고 오셨다

그 다음 아랫방 여물 쑤는 솥에 물을 붓고 어제 저녁 끓인 여물이 아직 남았는지라 쌀겨 보릿겨 등을 조금 더 넣어 섞은 뒤 아궁이에 불을 지피신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미 식어버린 자식들 자는 방바닥을 데워야 한다는 아비의 새끼 부양본능은 꾸역꾸역 흰연기로  이따금씩 붉게 타오르는 불로 지지직 툭탁거리며 탄다 이렇듯 두 평 남짓한 작은 외양간에서부터 우리집의 아침은 요란하게 시작되었다

 

가난한 농부의 두 칸 반 초가집이 비좁아 기역자 모양으로 외양간 겸 부엌, 방, 잿간, 돼지우리가 차례로 들어선 집을 한 채 더 지었다

이른바 아랫채이다.  

 

큰방에서 잘 때면  뒤안으로 난 작은 문 위로 내려앉은 눈을 쓰는 대빗자루 소리에 밤을 깨기도 했다

흙담으로 쳐진 집 뒷부분 외벽은 흙담인데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문은 서향집에서 맨 먼저 햇빛을 방안으로 날라다 주는 통로이다

문살은 대나무를 얇게 져며 대각선으로 교차하도록 문틀에 끼워 넣고 그 위에 창호지를 붙인 것으로 나무만든 격자무늬 창살은 엄두도 못내는 호사스런 집에서나 사용하는 것이었다 명색이 큰 채(안채)라는 집의 모양이 이 정도니 아랫방의 꾸밈새는 더 말할나위가 없겠지만 그래도 안채보다 나중에 지어서 벽지며, 두 쪽자리 앞 문은 새로 지은 집답게 큰 채에 비하면 번듯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보면 아버지는 어느새 토방을 말끔히 쓸어 놓았다

부엌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우물로 이르는 길, 돼지막과 변소로 가는 길을 한 자 넓이나 되게 깨끗이 쓸어 누런 흙색 길이 단정하게 나 있게 된다 

 

그리고 긴 겨울 밤

염산행 여덟시 막차 지나가는 버스 엔진음이 아스라히 들린지도 한참이 지났다.

아직까지 눈은 계속해서 내린다

토방 위는 물론 마루까지 넉넉하게 덮인다.자꾸 쓸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은 쉴 새 없이 온다

하늘은 아직 넓은 흰꽃잎 마냥 낙화하는 함박눈이 끝도 없이 내린다.

컹컹 산당의 개가 짖고 우스스슥 큰솔나무 가지에서 눈 떨어지는 소리가 집에까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