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의 일화 / 이수광
옛날 원덕수란 사람은 비에 막혀 굶어죽고, 진무기라는 사람은 옷을 받지 않아서 얼어죽었다.
세상에는 늙도록 분수에 넘치게 온갖 부기영화를 누리는 사람이 있느가하면, 이 두사람처럼 훌륭한 덕과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도 추위와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가 있으니 천도天道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
하정夏亭 유관柳寬 정승은 처음 이름이 관觀인데 나의 외가쪽으로 5대조가 되는 분이다.
청백리로 유명한 황희,허조와 함께 세종 때 정승을 지냈는데 흥인문 밖의 작은 초가에서 살았다.
그나마 비가 새서 방안에서도 우산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그는 비 오는 어느 날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산도 없는 집에서는 어떻게들 살지."
이 이야기는 필원잡기筆苑雜記 같은 책에 전한다.
하루는 임금께서 그의 집에 가셨다가 울타리도 없는 것을 보시고는 선공관宣工官에게 말해서 주인 몰래 밤 사이에 울타리를 둘러 주라고 했다. 그렇게 한 것은 그 분이 청렴하여 반드시 사양할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공이 비로소 이 사실을 알고 대궐에 들어가 감사하고 다시 사양했다. 그러나 임금께서는 허락하지 않았다.
후에 공의 아들 판서 계문이 집을 자못 높다랗게 지었다. 그것을 보고는 크게 놀라 당장 헐어서 다시 짓게 했다.지금도 이 이야기는 하나의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뒤에 우리 아버님이 공의 옛 집에 사시면서 짚으로 이엉을 이었더니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웃으면서 너무 소박하고 누추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신 아버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그래도 우산에다 비하면 너무 사치스럽지 아니한가?"
들은 사람이 기뻐하고 또한 탄복했다. 내가 이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이 시를 지었다.
옛날 하정의 집터 성 밖 한 모퉁이에 있더니
오늘은 청백리 그 집터 나에게 전해졌네
어찌하면 우산 하나로 이 세상 모두를 가릴꼬?
집 없고 헐벗은 사람들 찬비 맞을까 두렵네.
참판 조원기는 정암靜菴 선생의 숙부이다.청렴하기로 유명해서 가선대부에 오르고 다시 자헌대부에 올랐다.
어느 날 중종이 의정부에 하교했다.
"조정의 신하들 가운데 젊어서부터 절개가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노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있으면 보고하라"
조정에서 조원기를 천거하자 곧 서열을 뛰어 넘어 숭정대부로 올려서 이를 장려했다.
같은 시기에 판부判府 송흠이 성품이 맑고 생활이 검소하며 물욕이 없어 조원기와 함께 이름이 났었는데 그도 여러 번 승진하여 계급이 일품一品에 올랐으니 나라에서 청백리를 장려하려는 뜻이 자못 컸다고 하겠다.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송흠은 수학에 밝아서 지금 세상에 행해지는 명서命書가 그의 저술이라고 했다.
또 판서 이우직은 성품이 청렴해서 아무런 새업도 일삼지 않고 다만 술만 마셨다.어떤 사람이 세상일에 대하여 말하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정송강이 만사輓詞를 짓기를 "세상사에 무관심한 나그네, 다만 술에만 관심이있었네!" 라고 했다.
* 만사(輓詞): 죽은 사람을 윟여 짓는 글 만장(輓章)
* 원제 : 염결 廉潔
* 출처 : 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 강희맹 외 지음 / 손광성 외 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