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필(御筆)로 특별히 지중추부사 채제공(蔡濟恭)을 임명해 의정부 우의정으로 삼고, 이성원을 좌의정으로 올렸다. 또 어필로 채제공에게 하유하기를,
“지금 경을 정승의 직에 제수하는 것이 내가 어찌 경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여 이런 거조가 있는 것이겠는가. 평소부터 말이 충성스럽고 행실이 독실하였으니 또한 늦었다고 하겠다. 경은 모름지기 나의
허저(虛佇)의 뜻을 본받아 즉시 숙배하여 부족하고 어두운 나를 도와 널리 시사(時事)를 구제하라.”
하였다. 그리고 이어 사관(史官)에게 명하여 이 어필(御筆)을 용정(龍亭)에 싣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부는 무리를 앞세우고 그의 집에 가서 이 하유를 전하라고 하였다.
좌직 승지(坐直承旨) 조윤대(曺允大)와 홍인호(洪仁浩)가 정승을 임명한 전교를 되돌리고는 합문(閤門)에 나아가 입대(入對)를 청하니, 의금부에 내려 추고하라고 명하였다가 이내 삭직(削職)하고서 오위 장(五衛將) 안대진(安大進)을 임시 승지로 임명하였다. 얼마 안 되어 도승지 심풍지(沈豊之), 우승지 윤행원(尹行元), 동부승지 남학문(南鶴聞)이 또 입대를 청하니, 모두 파직하라고 명하였다. 심풍지 등이 합문 밖에 앉아 물러가려 하지 않으니, 불서용(不敍用)의 전형(典刑)을 더하여 시행하라고 하였다. 교리 신대윤(申大尹), 부교리 이우진(李羽晋), 수찬 김희채(金熙采)가 또 입대를 청하니 모두 체차하라고 명하였다. 심풍지 등이 마침내 물러나 정원으로 가서 연명 상소하여 뜻을 굽히지 않고 간쟁하니, 상이 전교하기를,
“이렇게 강력히 간쟁하는 것은 해괴하고 패악스러운 거조이다. 재작년 9월 12일 빈대(賓對)한 자리에서 입증(立證)하는
질언(質言)까지 하며 이후로 다시 중신(重臣)의 일을 제기하는 것은 임금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전교한 이후로는 다시 제기하는 자가 없었다. 대체로 생살(生殺) 위복(威福)이 임금에 달렸으니, 비록 용서할 수도 있고 용서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용서해서 등용하더라도 오히려 지나친 거조라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죄명(罪名)을 벗은 것이 이미 이와 같고 확실한 증거가 또 저와 같은 데이겠는가. 그런데도 당연히 다투어야 할 일로 보아 이처럼 시끄럽게 구니 이는 신하의 분의(分義)를 무시하는 것이다. 귀양을 보내는 것은 한갓 사람을 버리는 것일 뿐, 또한 근본을 바르게 하는 정사가 아니니, 이 소를 태워 없애고 이후로는 이 일로 금령을 어기고 진소(陳疏)하는 자는 임금의 말을 믿지 않는 율(律)로 논죄(論罪)하고 그런 소를 받아들인 승지도 같은 율로 논죄할 것임을 아울러 자세히 알게 하라.”
하였다. 이조 판서 오재순(吳載純)이 정청(政廳)에 나아가서 역시 하비(下批)하려 하지 않다가 누차 신칙한 뒤에야 비로소 명을 받드니, 파직을 명하였다. 기사관(記事官)
이종렬(
李宗烈)이 상의 하유를 받들고 가서 전하고서 채제공의 서계(書啓)를 받아와 아뢰니 돈유(敦諭)하는 비답을 내렸다. 제공이 또 아뢰기를,
“변변찮은 신 때문에 조정에 또 다시 시비를 야기시켰으니, 오직 속히 국법이 정한 대로 처벌받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정승을 임명하는 것이 얼마나 중한 일인데 어찌 일호인들 허술하게 헤아렸겠는가. 오늘의 거조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마음 속으로 등용하기로 결정했던 일이다. 앞서 중요하지 않은 직임에 제수했을 때에 한갓 갈등만 일으켰을 뿐이므로 전혀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대체로 시비를 잠재우고 시끄러움을 진정시켜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서로 좋게 지내는 경지에 이르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것이 어찌 이 대신 한 사람의 처지만을 위함이겠는가. 나의 생각 또한 심장하였다. 대체로 재작년 가을 빈대한 자리에서 내린 질언(質言)의 전교가 첫번째 전기(轉機)가 되었고, 그 뒤 평안 병사에 제수한 것이 두 번째 전기가 된 것이다. 이미 죄명(罪名)을 벗었고 또 죄를 씻어버리고 등용하였으니, 오늘의 이 직임은 다만 뜻밖에 온 절차일 뿐이다.
그런데 제신(諸臣)은 잘못된 거조로 보아 다투어 서로 시끄럽게 구니 어쩌면 이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심한가. 내가 대동(大同)과 태화(太和)의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나 깨나 마음에 맺혀 있는 것은 제신들도 일찍이 알고 있는 바이고, 더구나 이 대신을 끝내 불우(不遇)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제신들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 정원과 옥당의 일이 어찌 형식에 가깝지 않은가. 근래 풍속이 너무 성급하여 조정의 체통과 일의 체면을 모르니 이와 같이 유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바로 법으로 선포한다는 뜻이고 미리 경계시키는 것이다.”
하였다.
【원전】 45 집 690 면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