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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안수정등

低山下 2010. 11. 11. 15:33

   안수정등(岸樹井藤) 

 어떤 남자가 광야를 가다가 사나운 코끼리에 쫓겨 우물 속으로 피하게 되었는데 우물 안으로 드리운 칡넝쿨에 매달려 밑을 보니 4마리의 독사가 입을 벌리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고 위에는 흰 쥐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남자가 매달린 칡넝쿨을 쏠고 있는데 위에 있는 칡넝쿨의 벌집에서 꿀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남자는 생명이 위험한 상황을 잊고 꿀의 맛을 즐기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에 비유하여 무상 및 무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이야기다.

몇 십 년 전에 용성스님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살 수 있겠는가 ?" 하였는데 당시 많은 스님들이 그에 대한 답으로서,

"아야, 아야."

"어제의 꿈이니라."

"언제 우물 속에 들어갔던가."

등의 답을 하였다.

이때 전강스님은 "달다."라고 답하여 칭찬과 주목을 받았다.

안수정등의 일화에 대한 내용으로써 설명을 드립니다.

안수정등이라고 하는 말이 최초로 쓰이기는 저 유명한 중국의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裝)의 전기(傳記)인 대당 대자은사 삼장법사 전(大唐 大慈恩寺 三藏法師傳)에 안수정등이라고 하는 말이 최초로 쓰인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전기 9권에 보면 "현장은 항상 이 몸을 생각하기를 뭇 인연이 임시로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순간순간이 무상(無常)하다. 비록 안수정등(岸樹井藤)으로써도 위태롭고 나약해서 짝할 수 없다."고 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가, 과분한 탓인지 모르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전기에서 안수정등이라고 하는 말이 쓰이고는 있으나 중국의 선가에서는 이 말을 그대로 화두로 쓰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이 안수정등의 화두를 낳은 비유설화(譬喩說話)에 등장하는 "두마리 쥐가 등나무를 침범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라는 물음이 조정겸추록(祖庭鉗鎚錄)이나 선문염송(禪門捻頌)등에 보이는 것이 고작이 아닌가 한다.

각설(却說)하고, 현장의 전기에서 인명(人命)의 위태로움을 비유하고 있는 안수정등의 안수(岸樹) 즉 '강기슭의 나무'란 본래 대반열반경 1권에서 "이 몸은 마치 험준한 강기슭에 위태롭게 서 있는 큰 나무와 같아서 무너지기 쉽다. 폭풍을 만나면 반드시 쓰러지기 때문이다."고 설한 말씀에서 나왔다. 이 비유를 중국에서는 흔히 하유(河喩)라고 말한다. 이 '하유'역시 화두로 쓰인 흔적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그리고 정등(井藤) 즉 '우물속의 등나무'에 관해서는 두 가지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두 가지 기록을 소개하기로 한다. 그것은 안수정등에 관한 이야기는 많으나 이 화두의 근거가 되는 출전(出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으므로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다. 그 하나는 빈두로돌라 사위우타연왕설법경(賓頭盧突羅 爲優陀延王說法經)이다. 경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우타연왕을 위하여 빈두로돌라사 존자(尊者)는 이렇게 설한다.

"대왕이여, 옛날 어떤 사람이 광야(廣野)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 때] 크고 사나운 코끼리를 만나 쫓기게 되었습니다. 미친 듯이 달렸으나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때마침] 언덕 위에 있는 우물을 발견한 [그는] 곧 [우물 속으로 드리워진] 나무뿌리를 잡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매달려 있는] 나무뿌리를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이빨로 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물의 네 벽에는 네 마리 독사가 있는데 그 사람을 물려고 합니다. 또 이 우물 밑에는 큰 독룡(毒龍)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옆에 있는 네 마리 독사와 아래 있는 독룡이 무서워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매달려 있는 나무뿌리는 [뽑힐 듯이] 흔들리고 [그 때] 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꿀 세 방울이 그의 입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때 나무가 움직여 벌집을 무너뜨렸습니다. 벌들이 날아와서 그 사람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또] 들에 불이 일어나 [그가 매달려 있는] 나무를 태웠습니다. -중략-



 대왕이여, 광야는 생사(生死)를 비유하며 그 남자는 범부(凡夫)를 비유하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을 비유하며 언덕위의 우물은 사람의 몸을, 나무뿌리는 사람의 목숨을 비유합니다. 흰 쥐와 검은 쥐는 밤과 낮을 비유하고 [그 쥐들이] 나무뿌리를 갉는 것은 [사람의 목숨이]순간순간 줄어드는 것을 비유합니다. 네 마리 독사는 사대(四大)를, 꿈은 오욕(五欲)을 비유하며 [그를 쏜] 뭇 벌들은 나쁜 생각과 견해(見解)를 비유한 것입니다. 또 들불(野火)이 타는 것은 늙음을 비유하고 아래 있는 독룡은 죽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경이 설하고 있는 비유의 전모이다. 다른 하나는 이 비유를 압축한 기록으로서 번역명의집(飜譯名義集)이 전하고 있다.[괄호 안은 비유임] "옛날 어떤 사람이 두 마리의 술  취한 코끼리(生과 死)를 피해서 등나무(목숨의 뿌리)를 의지하여 우물(無常)에 들어갔으나 검은 쥐와 흰 쥐(달과 해) 두 마리가 등나무를 긁으려 하고 네 마리 뱀(四大)이 물려고 하며 아래는 세 마리 용(三毒)이 불을 토하면서 발톱을 펴서 잡으려 하였다. 그 사람이 위를 쳐다보니 두 마리 코끼리는 우물 위에 있어 의탁할 곳 없어 근심하고 있는데 홀연 지나가는 벌이 꿀방울(五欲)을 떨어뜨려 입안에 들어왔다. 이 사람은 꿀을 맛보자 위태로움을 모두 잊었다."

번역명의집은 대집경에 이 이야기가 있다고 했으나 대집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앞에서 든 비유가 그 원형이다. 이 비유를 흔히 정유(井喩)라고 한다. 이 비유는 몇 방울의 꿀맛에 도취되고 집착해서 삶의 실상(實相)을 잊고 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존(實存)하는 인간의 한계상황(限界狀況)을 적나라(赤裸裸)하게 설파한 설화(說話)로서 짝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한 설화 중에서 중국의 선가는 고작 "두 마리 쥐가 등나무를 침범할 때는 어떠합니까?"하고 화두를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 국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서 우리나라 선가에서는 하유와 정유를 묶어서 이 비유가 전하는 메시지를 총체적으로 묻고 있다. 이것이 안수정등화(岸樹井藤話)이다.

1949년 12월,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답게 살자'는 결사(結社)를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 스님들(청담, 자운, 성철, 월산, 혜암, 향곡, 성수, 법전)은 제방(諸方)의 선지식(善知識)에게 이 안수정등 話를 제기 하였다.

이 때, 어떤 스님은 무릎을 탁 치며 '아! 달다'하고 일어서 문밖으로 나갔다 하고 어떤 스님은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하고 어떤 스님은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고 했다 한다.

이 물음에 성철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뒤에 성철 스님에게 그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물은 문수보살에게 유마거사가 침묵한 것과 같은가 다른가 물었다. 그 때, 스님은 '조주와 같이 할(喝)을 하랴, 덕산과 같이 방(棒)을 하랴. 니 원하는 대로 해 주마' 하셨다.


 

출처 : 옥당골 아이들
글쓴이 : 이도연(초/43,중/21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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