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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정찬주의 이야기

低山下 2010. 11. 11. 16:13

정찬주 장편소설 - 인연 49
 
제 9장 발심수행
기사등록일 [2007년 09월 18일 화요일]
 

“스님, 말이 뱀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일러 봐라.”
“공연히 해본 소립니다.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인정사정 끄달리지 말고 일념 성취해야 되네.”

일타는 참선에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었다. 겨우내 율장 공부를 했지만 가슴 한 구석이 늘 허전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은 동산이었다. 동산을 보면 아무 망상 없이 참선공부하려는 마음이 솟구치곤 했던 것이다. 일타는 또 동산을 만나 자극을 받고 싶었다.

통도사 계곡에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고 버들강아지가 피어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초봄이었지만 아직은 바람 끝에서 물러가는 겨울이 느껴졌다. 운수납자들이 바랑을 메고 걷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었다. 일타는 또 바랑을 챙겨 메고 범어사로 향했다. 화두 들고 참선하는 데만 혼신의 힘을 다 쏟고 싶었다.

일타가 조실스님에게 정식으로 받은 화두는 송광사 삼일암에서 정진할 때 효봉에게 탄 ‘간시궐(乾屎厥)’이었다. 어떤 중이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묻자, 중국의 운문선사가 ‘마른 똥막대기다(乾屎厥)’이라고 대답한 데서 연유한 화두였다.

그러나 일타는 간시궐을 화두로 들었지만 의심을 오래 내지 못했다. 염화두가 안되자 임시방편으로 송화두를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의심이 나지 않고 화두가 달아나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6.25전쟁 중 전주 법성원에서 목탁을 치며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다가 문득 영산회상 염화시중 시아본사 석가모니불(靈山會上 拈花示衆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중에 염화시중에서 무언가 마음에 계합되는 바를 느꼈다.

불현듯 계합된 화두지만 염화시중은 선종의 화두 중 첫 번째 화두였다.

부처님께서 마가다국 왕사성의 영축산 독수리봉에서 설법하고 계실 때였다. 한번은 허공의 천인들이 부처님께 꽃공양을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꽃을 한 송이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다.

그런데 대중들은 부처님이 꽃을 드신 이유를 알지 못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수군대기만 했다. 그때 가섭이 일어나 부처님이 꽃을 드신 이유를 깨닫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에 부처님이 대중에게 말했다.

“여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으니 이를 마하가섭에게 전하노라.”

일타는 전쟁 중에 어디를 가나 ‘염화시중’을 화두로 들었다.

‘부처님은 왜 대중에게 꽃을 보였나.’
‘꽃을 드신 까닭이 무얼까.’
‘왜….’

일타는 효봉에게 탄 화두를 버리고 스스로 간택한 셈인데, 이래도 되는 것인지 일말의 불안은 떨쳐버리지 못했다. 응석사의 금오나 법성원의 진우도 화두는 반드시 선지식에게 타서 지도와 점검을 받으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타는 스스로 염화시중을 들고 있는 것이었다.

일타가 범어사로 가는 이유 중에 하나도 화두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상의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일타는 동산을 만나 바로 이 화두 문제를 꺼내지 못했다. 그만큼 어렵고 조심스러웠다.

전쟁 중 임시 유골안치소로 운영되던 범어사는 예전의 절 모습을 빠르게 되찾고 있었다. 요사채마다 가득했던 전사자의 유골들도 다른 곳으로 옮겨 갔고, 군인들의 막사도 다 철거되어 고풍스런 선찰의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때가 말(馬)의 해인 갑오년이었다. 그러니까 작년은 뱀의 해인 을사년이었고, 재작년은 용의 해인 임진년이었던 것이다. 일타는 법당으로 가 삼배를 하고 조실채로 올라갔다. 마침 동산이 뜨거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일타는 동산에게 절하고 다탁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동안 무엇을 공부했는가.”
“임진년에는 성철스님 회상에서 동안거를 보냈고, 이후 천화율원에서 자운스님에게 율장 공부를 했습니다.”
“화두는 성성한가.”
“들렸다 달아났다 합니다.”
“어디 한번 일러보게.”

일타는 숨이 턱 막혔지만 기지를 발휘했다. 작년의 뱀해와 올해의 말해를 가지고 말했다.

“스님, 말이 뱀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동산이 주장자를 들더니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장자를 들었다는 것은 허튼 소리를 하거나 시건방진 소리를 하면 내려치기 위함이었다. 일타는 등골이 서늘했다.

“일러 봐라.”
“그 뜻이 무엇입니까.”
“일러 봐라.”

일타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합장을 했다.

“공연히 해본 소립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아무 것도 모릅니다.”

동산이 그제야 차를 한 잔 따라주며 말했다.

“수좌는 심통 터지는 소리를 할 때가 있느니라. 수좌는 다 그런 것이야. 하하하.”
“죄송합니다.”

동산이 크게 껄껄 웃으며 자신이 정진할 때를 얘기해주었다.

“내 토굴에 살 때였어. 윗방에 수좌가 배가 아프다고 초저녁부터 그러더구먼. 화두가 한참 들렸는지 처음에는 배 아프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중에는 안 들리더구먼. 내 정진하느라고 남의 사정 봐줄 수가 없었던 거네. 수좌는 인정사정 끄달리지 말고 하여튼 일념 성취해야 되네.”
“늘 잊지 않겠습니다.”

동산은 차가워진 차를 마시더니 벼루를 꺼내 먹을 썩썩 갈았다. 편지지에 게송 한 수를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

 

 

살금살금 땅을 밟으니 사람이 알까 두렵도다
말하나 웃으나 분명하니 다시 의심을 말지어다
지자는 용맹으로 지금 바로 잡아 취할 뿐이니
날이 새어 닭이 울 때를 기다리지 말지니라.
輕輕踏地恐人知
語笑分明更莫疑
智者至今猛提取
莫待天明失却鷄

 

 어느 날 일타는 이때다 싶어 슬그머니 화두 얘기를 꺼냈다.

“스님, 화두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어떤 화두를 들고 있는가.”
“원래는 제가 어릴 때 통도사에서 스스로 시심마, 이뭣고 화두를 재미삼아 들다가 효봉스님을 뵈면서 간시궐로 바꾸었습니다.”
“음, 마른똥막대기, 좋은 화두지.”
“그런데 스님, 간시궐 화두는 저와 인연이 없었나 봅니다.”
“왜 그런가.”
“효봉스님한테 간시궐 화두를 처음 탔을 때부터 썩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진진찰찰이 다 법왕승인데, 마른 똥막대기인들 부처 아닐 게 뭐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화두는 어찌 됐는고.”
“강원에 들어와서 공 차러 쫓아다니고, 친구들 하고 장난하고, 씨름하고 뭐 한참 까불대다 보니까 화두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또 전쟁이 나서 피난민들이 수백 명씩 피난을 가고 길가에서 자고 그러니까 제 힘으로는 화두가 잘 안 들렸습니다. 그래서 불보살의 가피력을 입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기도와 염불을 했습니다. 하루는 석가모니 정근을 하다가 영산회상 염화시중에 이르러 문득 아, 이 염화시중이 내 화두구나 하고 마음에 계합이 됐습니다.”
“염화시중이라 하면 선종제일의 공안이지.”
“그래서 간시궐이고 뭐고 다 내버리고 몇 년 동안 염화시중만 들었습니다.”
“화두를 들면 됐지 내게 물어볼 것이 뭐가 있는가.”
“화두란 큰스님에게 타는 것이 원칙이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스스로 염화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잘못 된 거 아닙니까.”
“허허허.”

동산이 일타의 등을 툭툭 때리면서 말했다.

“일타수좌는 과거부터 선근이 많구먼. 과거부터 선근이 많아서 그런 화두가 잡힌 것이지. 그 이상의 화두가 어디 있겠는가.”

일타는 동산의 격려를 받고 용기백배했다. 화두를 자신이 간택한 것이지만 마치 동산에게 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자 선지식에게 탄 화두가 아니하는 불안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일타는 범어사에서 화두를 들고 방바닥에 눕지 않는 장좌불와에 들어갔다. 졸음이 오면 경내를 돌아다니며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을 했다. 젊은 일타에게는 동산의 한 마디가 활구가 되어 일타를 거듭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범어사도 큰절이다 보니 대중 살림하는 데 자잘한 일이 생기곤 했다. 조실인 동산과 대중 살림의 총 책임자인 주지와 그리고 실제로 대중살림을 하는 원주 간에 마찰이 발생했다.

 

 사단은 원주가 조실인 동산에게 보고를 하지 않고 절 돈을 가지고 장을 보러 다니면서 터졌다. 주지에게만 보고하고 밖으로 나가니 대중들 사이에 원주가 마음대로 돈을 쓴다고 소문이 돌았다. 누군가가 동산에게 그렇게 알려주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보고만 하고 시장을 다녔더라도 그대로 믿었을 동산인데, 상황이 자꾸 뒤틀렸다. 보고를 받지 못한 동산이 원주를 타박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원주가 돈을 무더기로 가지고 장을 보러 갔어.”

이를 중재하기 위해 일타가 원주를 찾아가 조언해도 소용없었다.

“큰스님께 쌀 팔러 갑니다, 뭐를 사러 갑니다. 이런 식으로 말씀드리면 단순하셔서 홀랑 넘어갑니다. 그러니 장 보러 갈 때는 말씀을 드리십시오.”

그러나 원주는 화를 냈다.

“빌어먹을 노장님이 나를 의심하시다니.”
“의심이 아니라 대중생활을 바로 잡으려고 하신 겁니다. 범어사에 큰스님이 계시니까 그래도 시주물이 들어오고 수좌들도 찾아오지 않습니까.”
“내가 어디 돈 따 먹으로 장 보러 간 줄 아시오.”
“큰스님은 그런 생각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일타가 동산을 변호하자 원주가 더 화를 냈다.

“노장님이 고생한 것은 알아주지 않고 이거 나 원 더러워서!”
“좀 심하십니다.”

원주의 섭섭함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동산에게 자존심을 내세운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원주가 보고를 못하겠다고 버티자, 결국 대중공사가 벌어졌다. 선찰의 법도대로 재무 소임을 두어 재무가 원주가 사용하는 돈의 입출 내역을 기록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때 범어사에는 재무를 볼 적임자가 없었다. 할 만한 스님을 천거하면 동산이 승인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지는 동산이 신임하는 일타를 천거했다.

“재무감은 범어사에 일타수좌 밖에 없습니다. 재무는 단순히 돈의 출금 내역을 기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도들이 오면 법문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재무감은 일타수좌뿐입니다.”
“그러고 말고. 주지스님 뜻대로 하시오.”

모처럼 주지는 동산에게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일타에게는 청천벽락 같은 소리였다. 며칠 전부터 장좌불와를 하면서 신심을 새롭게 내고 있는데, 사판이 되라고 하니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일타는 차마 동산에게 가지 못하고 주지를 만났다.

“이제 막 화두 들고 용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저보고 재무를 보라 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조실스님께 말씀을 다 드렸어요. 이번에 딱 한번만 재무를 봐주세요.”
“안 됩니다.”

일타는 주지실을 나와 자신을 한탄했다. 일자무식이거나 바보라면 이런 곤경에 처하지도 안 했을 터였다. 일타는 중노릇은 중노릇만 해야지 사람노릇하고 경을 보고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불현듯 자화장을 한 외할아버지 추금이 떠오르기도 했다. 추금은 장작 위에 좌선한 자세로 앉아 스스로 불을 질러 소신공양을 했던 것이다.

‘외할아버지 스님은 온몸을 태워 부처님께 소신공양을 하신 분이다. 당신의 신심을 부처님께 그와 같이 드러내신 분이다. 중노릇하려면 추금스님처럼 죽음을 넘어서야 한다. 나도 손가락이라도 태워 용맹심을 내어보자.’

또한 손가락이 없으면 사람들이 온전한 사람으로 쳐주지 않아 중노릇을 더 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타는 『능엄경』의 한 구절에 가슴이 탁 트이는 것을 느꼈다.

내가 열반에 든 뒤 어떤 비구가 발심하여 결정코 삼매를 닦고자 할진대는, 능히 여래의 형상 앞에서 온몸을 등불처럼 태우거나 한 손가락을 태우거나, 몸 위에 뜨거운 향심지 하나를 놓고 태울지니라. 내 말하노니, 이 사람은 비롯 없는 숙세의 빚을 한 순간에 갚아 마치고, 길이 세간을 떠나 영원히 번뇌를 벗어나리라.  〈계속〉


917호 [2007-09-19]
 


      
  명상음악 /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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