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보은출장

低山下 2011. 7. 8. 09:58

 

결혼하기 전에 두어번 찾았던 속리산의 보은을 30년도 훌쩍 넘은 세월이 지난 5월에 3 주간 출장을 가게 되었다.

어떻게 아카시아 꽃이 피고 졌는지 모르겠다.

간혹 술 한 잔 하고 세상을 온통 채운 개구리의 울음소리에 간간히 섞여 들리는 소쩍의 울음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을 정도로 보은 수한면 발산리는 아직 자연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었다,  어떤 날은 농수로를 평화롭게 밤새 흐르는 물소리들과 밤이 이슥하도록 벗하면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첫 날 밤을 자고 나서  상큼한 풀내음을 온 몸 가득 담고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신비로운 일을 하는 젊은부부를 만났고, 처음 본 낯선 방문객에게 지적인 용모의 부인은  커피 한 잔을 정성스레 대접해 주었다. 신비롭고 수수한 식물들은 이 마술사부부의 손에서 석부작으로 목부작으로 또는 갖가지 모양의 돌수반 위에 경이로운 세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출장목적은 한우고기를 부위별로 분해하여 진공포장하는 식육포장사업과 한우고기 도소매를 하는 계열회사의 경영부실에 따른 영업중단상황을 파악하고 지나치게 과다한 미수금회수와 향후 계속사업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아이템자체를 별로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대로 살아있는 생명을 도살하여 인간의 식도락과 건강을 위해 중간과정을 처리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뭇 생명은 모두 존재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함부로 그 생명을 해해서는 안된다는 불교적사상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했고, 방생은 못할망정 살생하는 일에 직접 연관된다는 생각 때문에 내키지 않았지만 일은 일이다 라는 생각도 한편 들기도 해서 내려간 것이다.

 

  실제로 작업현장에 들어가서 각 부위별 명칭을 물어서 배우고 지방을 제거하는 등의 일련의 공정을 체험했다.  축산물우해요소 제거 제도인 HACCP인증 메뉴얼에 맞게 진행되는지 위생복과 장화를 신고 하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두 마리 분량의 작업을 두 시간 반에 걸쳐 정형사라고 부르는 직원들과 함께한 시간도 가졌다. 작업환경과 안전문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역시 3D 업종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장자  양생주   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았다.

 손을 놀리고 어깨로 바치며 발로 밟고 무릎을 굽힐적마다 칼질하는 소리가 싹싹 쓱쓱 울려퍼져 음악적인 가락을 이루었다.

 

 그것은 상림의 춤과 같고 경수의 장단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문혜군은 감탄했다.

 '오오, 잘도 한다' 재주가 여기까지 미칠 수 있단 말인가 

 

포정이 칼을 놓고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로서 재주보다 우월한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잡을 때에는   소의 겉모습만 보였는데 3 년이 지나자 온전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오로지 마음으로 일할 뿐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눈의 작용을 없애니 마음의 자연스런 작용만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좇아 큰 틈을 벌리고 크게 비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본디의 구조에 따르는 것입니다.

 아직 까지 뼈와 힘줄이 엉켜 있는 곳을 가르는데 실수가 없었는데, 하물며 커다란 뼈다귀이겠습니까.

 능숙한 백정이 해 마다 칼을 바꾸는 것은 뼈를 베므로 칼날이 부러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지닌 칼은 19년 쓴 것이므로 수 천마리의 소를 갈랐지만 칼날은 새로 숫돌에 간듯합니다.

 

 소의 마디는 사이가 있지만 칼날은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틈으로 들어가 여유있게 그 칼날을 놀리므로 19년이나 사용했지만 숫돌에 방금 간듯합니다'

일하는 중에 힘든거란 오직 한 군데 뼈와 힘줄이 엉켜 있는 곳에 다다르면 그것이 힘든 일인줄 알기 때문에 크게 조심하여 눈은 한 곳을 응시하고 칼질은 더디어져서 칼놀림이 몹시 미묘해집니다.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듯이 자연스럽게 일이 끝나면 칼을 들고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잠시 주저하다가 이내 흐믓해져서 칼을 닦아 넣어둡니다.

 

문혜군은 감동했다.

'훌륭하구나'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의 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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