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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느 목수의 이야기(2) -김응선-

低山下 2013. 7. 22. 13:48

 

천년사찰 꿈꾸는 도편수 김응선 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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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달생편(達生編)에 목수 '경'이라는 사람은 나무를 이용해 뭔가를 만들어 낼 때 자신만이 치르는 의식이 있었다. 그 의식을 이렇게 적고 있다.

"먼저 재(齋)를 올려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벼슬을 바라는 생각도 잊고 명예와 권세도 잊고 이레동안의 재를 마칩니다. 그러면 자신마저 잊어버리게 되는데 안으로는 기술이 온전하고 밖으로는 사물(物)의 어지러움이 없어집니다. 그때 비로소 산으로 들어가 나무의 천성을 살피고 바탕이나 모양이 갖춰진 나무를 본 뒤에는 장차 자신이 만들거나 지을 건물 혹은 물건을 눈 앞에 그려보지요. 그 다음에야 손을 대어 일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김응선거사님은 목수 '경'을 닮고 싶은 54세의 송광사 중견목수다. 송광면 평촌에서 태어나 자란 거사님은 어려서부터 곧잘 조계산을 오르내렸다. 그리고 울창한 숲 속을 헤매며 주머니 칼로 나무토막을 깎아 오리도 만들고 배도 만들며 아름드리 큰 나무 밑에서 놀기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나무를 보면 남들보다 무척 좋아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직업에 직접적인 동기가 된 셈이다.

거사님은 군제대 후 한옥짓는 일에 잠시 참여하다가 80년 후반 송광사 대웅전 공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인간문화재 이광규선생의 문하(門下)에서 부편수 노릇을 해가며 우리식 밀대패질에서부터 차근차근 하나에서 열까지 기초를 배워나갔다. 부편수는 현장 실무를 총괄하는 사실상 부책임자나 다름없다. 궁궐건축의 정통계승자였던 선생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무만 깎는다면 평생 목수질밖에 못한다. 나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생각하는 목수가 돼라"고. 이광규선생이 돌아가신 후로는 목수 조희관씨와 함께 구산(九山)스님의 탑이 있는 탑전 건축에 참여했다. 그밖에 문수전 2층 건물과 효봉스님 영각ㆍ비전ㆍ 종무소ㆍ화엄전 복원공사 등 그의 정성과 땀이 묻어있지 않은 곳은 없다. 거사님에게 한번 책임이 주어지면 자신이 맡은 일은 신명나게 해냈다. 대패질이든 망치질이든 열심히 타고 난 솜씨에 꾀 한번 부리지 않고 묵묵히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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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잠시 일을 중단했다. 그동안은 밖에서 일반공사를 맡아서 했는데 절집과 인연이 있었던지 경남 청암사ㆍ경북 상주 흥룡사ㆍ화순 쌍봉사ㆍ해남 미황사ㆍ일반 재실 등에서 일하기도 했다. 덕분에 거사님은 대목장(大木匠)으로서의 오랜 경험과 연륜으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게 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나무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으니까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았지요. 그런 나무를 다룬다는 건 여간 조심스런게 아니에요. 더구나 그 나무로 절집을 헐어내고 보수하고 새로 짓는다고 생각하면 더욱 긴장하지요. 늘 내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신 것처럼 정중하게 대해요. 그리고 문화재 관리청에서 만든 설계도에 따르려면 고치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재주를 부리지 못하니까 답답할 때가 많아요. 옛날엔 감독이 없고 설계도가 없어도 목수들 눈대중으로 척척 알아서 하고 나무에 찍은 먹 하나도 정확하게 파고 자르고 깎아서 집 하나는 꼼꼼하게 거뜬히 지었어요. 그럴 땐 목수가 자신이 지을 집이나 건물에 머리를 짜내서 갖은 재주를 다 부릴 수 있었어요. 요즘 군청에서 나온 감독관들은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가 나온 사람들이라 어떤 나무인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지요." 일하는 사람이 일 열심히 하는 것외에는 최고가 없다고 거사님은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무릎이 다친 적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지붕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거사님은 다른 사람에 비해 건강하고 큰 사고 한 번 없어서 늘 부처님께 감사드린다.

천년 사찰이다 보니 목재를 쓰는 것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수령(樹齡)도 아주 오래된 걸로 2백년은 넘어야 하고 육송(陸松)보다는 천년이 간다는 적송(赤松)이 안성맞춤이다. 요즘엔 환경오염이다 산불이다 벌채다 해서 산림 황폐화로 인해 나무 구하기가 갈수록 힘들다. 그래서 '훌륭한 목수는 죽은 나무에 두번째의 목숨을 준다'는 말이 있다.

거사님이 쉬는 날은 여름 우기 때와 절집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그리고 년초(年初) 3일간이다. 거사님에겐 대학 3학년에 재학중인 큰아들과 군제대 후 복학준비중인 둘째 아들, 역시 대학생인 막내딸 등 2남 1녀가 있다. 부인은 광주 흥룡사에 열심히 나가는 신심깊은 불자다. 기자가 현장에 갔을 때 건강하고 잘생긴 청년이 거사님 곁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둘째아들이란다. 거사님을 꼭 빼닮아 오똑한 콧날에 큰 귀가 돋보인다. 거사님의 취미는 정원수 가꾸러 산에 돌아다니는 것인데 시간이 없어서 그러질 못하고 있다. 대신 후세에 길이 남을 만한 절집을 거사님의 포부대로 지어보고 싶은 소박한 꿈이 남아있는 한 목수가 흘려보낸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출처 : 처처도량

출처 : 나무과자
글쓴이 : 순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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