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지식

조천록 서

低山下 2011. 1. 24. 17:48

 

 


대개 듣건대 황화(皇華)의 사명(使命)을 받드는 자는 일찍이 미치지 못할 듯한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널리 묻고 방문하기를 꾀한다고 한다. 그러니 거쳐 가는 지역이나 만나게 되는 정형(情形)에 대해서 산천이나 성곽 등을 모두 드러내어 문장을 지어서 그 뜻과 기운을 밝게 하는 것이다. 요컨대 상국(上國)을 두루 둘러볼 생각과 광영(光榮)을 그리는 생각을 가지고 관상(冠裳)이나 옥백(玉帛)의 회합에 참가할 수 있는 자는 대개 적임자를 얻기가 어려운 법이다. 현재 성천자(聖天子)께서 위에 계시어 운수가 바로 한창인 때를 당한지라 문천(文泉)이 크게 장대해졌는바, 무릇 저경(楮卿)이나 묵객(墨客) 및 소인(騷人)이나 우사(羽士)가 한번 읊고 한번 노래함이 큰 교화를 두루 펴고 아름다움을 고취시키는 데 족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지난번에 조선의 사군(使君) 김상헌(金尙憲)이 우연히 자신이 지은 조천록(朝天錄)을 꺼내어서 보여 주었는데, 읽어 보매 식견과 지취가 고매하고 흉금과 회포가 시원스러워 두공부(杜工部)의 깊은 생각이 있으면서도 울적한 데에 빠져들지 않았고, 이적선(李謫仙)의 시원스러움이 있으면서도 방자한 데로는 흐르지 않았으며, 도오류(陶五柳)의 담박함이 있으면서도 적막한 데에는 빠져들지 않았다.
음률(音律)이 악기(樂器)가 울리는 듯하고 대우(對偶)가 금석(金石)과 같이 단단한 데에 이르러서는 소리가 숲 속을 진동시키고 메아리가 구름까지 닿는 아취가 크게 있었다. 그러니 우리 중국 문명의 교화에 고취되어 그 나라 임금의 휴명(休命)을 빛나게 한 것이 어찌 얕고 적겠는가. 내가 그 때문에 기꺼운 마음으로 서문을 지어서 더욱더 거룩한 세상의 유신(維新)의 다스림을 드러내었다. 궁벽한 곳에 있는 먼 나라까지도 모두 문물이 뛰어난 나라가 되었는데, 더구나 속국(屬國)의 아래에 끼어 있는 조선과 같은 나라이겠는가. 이 뒷날에 먼 외방에서 사신이 조회하러 오면 나는 마땅히 이 편(編)을 시권(詩卷)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천계(天啓) 정묘년(1627, 인조 5 ) 중춘일(仲春日)에 예부서부사좌시랑 겸 한림원시독학사(禮部署部事左侍郞兼翰林院侍讀學士) 이강선(李康先)은 가수헌(嘉樹軒) 안에서 쓴다.


 

[주D-001]저경(楮卿)이나 …… 우사(羽士) : 모두 문장을 짓고 시를 읊는 등 문필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2]두공부(杜工部)의 …… 않았다 : 두공부는 두보(杜甫)를 가리키고, 이적선(李謫仙)은 이백(李白)을 가리키고, 도오류(陶五柳)는 도잠(陶潛)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