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

운오영의 달밤 /수필

低山下 2013. 2. 19. 11:47

달 밤 -윤오영-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달빛이 비치는 시골 풍경을 바탕으로 하여 독특한 분위기와 정감을 빚어 내고 있다. 작가가 김 군을 찾아 갔다 못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도입 부분이고, 우연히 노인을 만나 따뜻한 인정을 체험하는 부분이 분위기의 정점이며 작별 부분이 결말로 되어 있다. 가장 큰 감동은 역시 달빛의 밝음, 밤의 고요함, 노인의 정이 어우러진 둘째 부분이다. 극단적이라 할 만큼 말수를 줄이면서 마치 한 폭의 정물화(靜物화)처럼 제시한 시골의 풍경에서 무르익은 인정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글을 감상하는 데에서 유기적인 글의 짜임새와 같은 요소는 부수적이라 할 수 있다. 우선은 소재들 자체가 연출하는 분위기와 정서에 초점을 두고 음미해 나가야 한다. 또 지나치게 주제에 집착하여서도 감상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그만큼 이 글은 뜻의 전달보다 정서의 환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달빛의 밝음, 밤의 고요함, 노인의 정(情), 이 셋이 이 작품의 서정적 분위기와 주제를 결정짓는 요소들이다. 마지막 문장 '얼마쯤 내려오다 보니, ∼'는 박두진의 '돌아오는 길'을 연상케 한다.

선적이고 도교적인 이미지가 가득한 이 글은 원고지 5매 정도의 짧은 글이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함축한다. 고독에 시달리고 고독을 음미하고 고독을 사랑하는, 품위와 기골과 통찰력을 갖춘 지은이의 정감이 행간 가득 스며 있는 글이다. 특별한 내용없이 조용한 한 폭의그림- 무한히 긴 해설을 쓸 수도 있고, 한 줄도 군더더기를 더 붙일 수 없기도 하다.

요점정리

성격 : 경수필, 서정적 수필 → 회고적, 담화적, 함축적, 소박함

표현 : 정물화에 비길 수 있는 정적 구도

압축미 있는 간결체 문장

향토성 짙은 서정성의 부각

생략적 표현과 극도의 압축에 의한 은근한 미적 효과

주제 : 달밤의 정취와 향토적인 아름다운 인정

달밤에 우연히 이루어진 아름다운 인간의 인정어린 모습

출전 : [고독의 반추](1974)

생각해 보기

[ '달'의 이미지 ]

'달'은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동양문학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데, 중국문학은 물론이고 우리의 문학에도 향가 이래로 수많은 시조를 비롯한 문학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재이다. '소망이나 기원의 대상으로서의 달', '숭배와 존중의 대상으로서의 달', '그리움의 대상으로서의 달', '원만하고 고귀한 성품의 소유자를 상징하는 것으로서의 달', '왕이나 충신의 상징으로서의 달' 등의 의미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의 달은 그러한 특별한 의미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정감어린 인간적인 달로 나타나고 있다.

작품 읽기

내가 잠시 낙향(落鄕)해서 있었을 때 일.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윗마을 김 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 달밤의 외출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 가겠습니다."

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

하고 물었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 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 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農酒) 두 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죽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 노인과의 우연한 만남

이윽고,

"살펴 가우."

하고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 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 노인과의 작별

*낙향 : 거처를 시골로 옮김.

*농주 : 농사일을 할 때에 일꾼들을 겪기 위하여 농가에서 빚는 술.

*내가 잠시 낙향해서 있었을 때의 일 : 서술격 조사 '-이다'를 생략했을 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 등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생략한 표현법

*나는 밖에서∼그대로 돌아섰다. : 김 군을 찾아간다고 갔으나 정작 만날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데다가

대문은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한지라, 그냥 돌아섰다.

*웬 노인이 한 분∼보고 있었다. : 노인과 밝은 달빛, 곧 인간과 자연의 자연스러운 동화, 거기에 노인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배어 있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 마셔 버렸다 :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나도 따라 마셨다기보다는 달밤이 주는

분위기와 노인의 과묵한 인정 등이 어우러져 일어난 일이라 보는 것이 좋을 듯함.

*얼마쯤 내려오다 ~ 그대로 앉아 있었다 : 달밤의 정경과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노인의 자태를 볼 수

있음. 이미 노인의 심경은 물아일체의 경지에 접어든 것처럼 보임.